흉가괴담

수능 준비로 지친 고 3 여름 어느 날.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해수욕장은 못 가더라도 어딘가는 가봐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 3이라서 돈도 시간도 없었기에 특별한 경험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동네 뒷산에 있는 흉가에 친

구들과 가기로 했다. 주변 분위기는 음침하거니와 마을 사람들도 쉬쉬하던 흉가라 밤이 되면 모두들 흉가 주

변으로 다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슨 생각으로 갔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좋은 생각이라며 친구들과 나름대로 피서 갈 준

비를 했다.


쌀, 라면, 버너, 사진기 등등.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저는 친한 친구 두 명과 흉가로 갔다.


흉가에 가니 굉장히 무서웠지만 흉가를 돌아다녀도 결국 기대하던 건

나오지 않아, 긴장을 풀고 친구들과 캔맥주를 마셨다.

그러다 그만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 깼다.

소리는 건너편에 있는 부엌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계속 들리는 소리…….


우리를 제외한,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흉가에 누군가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나는 자고 있

는 친구들을 깨웠고, 친구들

역시 들려는 소리에 잔뜩 겁을 먹었다.


그래도 세 명이 있으니 귀신이라도 잡을 수 있겠지 라는 근거 없는 용기가 생겨났고 조금씩, 조금씩 부엌으로
다가갔다.


부엌문을 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계속 됐다.

랜턴으로 부엌을 비췄는데도 아무 것도 없었다.

여전히 들려오는 소리…….


다른 방인가 싶어서 뒤돌아서는 찰라,

부엌 구석을 비친 랜턴에 너덜너덜한 치맛자락이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불빛을 조금씩 옮겨가자 

우리 눈에 들어오건…….


너덜너덜한 소복을 입고 회색 빛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우리가 가져온 쌀을 먹고 있는 여자였다.


우리가 일제히 비명을 질러대자 그제서야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아뿔싸.


입은 비정상적으로 찢어져 있고,

코는 문드러진 채로 없는데다가,

눈은 새하얀 흰자만 부릅뜨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놀라 정신 없이 흉가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수능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날은 거실에서 어머니께서 티비를 보고 계셨고

저는 제 방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너 라디오 켰니"

"아니요, 공부하고 있었어요"


어머니께선 겸연쩍은 표정으로 다시 거실에 가셨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들어오시더니 라디오 왜 안 끄냐고 화내시는

거였다.


그래서 라디오 콘센트도 안 꼽았다고 해명하자

어머니께서 이상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이상하네, 왜 네 방에서 자꾸 여자 웃음소리가 들리니?"


처음에는 티비 소리인가 싶었는데 소리도 줄여도

제 방에서 깔깔 하는 여자 웃음소리가 나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그 뿐이 아니였습니다.

다음 날 저녁, 역시 제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밤늦게 일을 마치고 오시는 어머니께서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셨습다.


"너 뭐 하는 여자야!"


어머니는 방 안에 들어오시지 마자 갑자기 소리를 지르셨다.

전 무슨 일인가 싶어 영문도 모른 체 어머니의 흥분을 가라앉혀드렸고

자초지정을 물었다.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시는데 제 방 창문을 보니,

스탠드 불빛에 비친 창문에 웬 여자가 제 뒤에 서 있더라는 것이었다.

분명 내 방에 나 혼자였는데…….


불현듯 며칠 전의 흉가에서 겪은 일이 생각났고 어머니께 자초지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어머니께선 며칠 전부터 초롱이(저희 집 강아지)가 너만 보면 짖는 게 이상하셨다며 내일 당장 절에

다녀오자고 하셨다.(물론 수험 중에 흉가는 왜 가냐고 혼났다만)


다음 날 저는 어머니와 자주 가는 절에 가서 주지스님께 부적을 몇 장을 받았다.

부적을 받자마자 집에 왔는데, 이상하게도 초롱이가 보이지 않았다.

식구들이 외출하고 오면 언제나 반갑게 마중 나왔었는데.


이윽고 부적을 붙이려고 제 방에 들어섰는데, 이럴 수가.

…초롱이가 죽어있었다.


초롱이는 내가 흉가 갈 때 입었던 티셔츠에 목이 둘둘 말린 채로 죽어있었다.

분명 그 옷은 옷장에 넣어두었던 건데.

그러고 보니 초롱이가 제 방 옷장을 보고 짖었던 게 생각났다.


나는 방에 부엌을 붙이고 얼른 티셔츠를 불태웠다.

다행히도 그 날 이후로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장난으로도 흉가 같은 곳에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다.